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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독립운동을 가능케 한 사나이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19-03-15 오후 6:38:07  245
- File 1 : 20190315183814.jpg  (47 KB), Download : 28

 

 

 

유화웅 시인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 교장 

3.1 독립운동사에서도 3.1운동이란 거족적 거사가 어떻게 왜경의 감시와 정보망에 감지되지 않고 1919. 3. 1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성공적으로 독립선언을 하고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을까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독립선언의 날짜와 시간은 고종황제의 장례식 날인 33일에 계획되었고 여기에 맞춰 민족 대표도 33인을 뽑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날 거사는 고종황제께 불경(不敬)하니 32일로 하루 앞당기려 하였으나 그 날은 일요일이어서 기독교 측이 반대하여 하루 더 앞당겨 31일로 거사일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거족적(擧族的)거사가 성공하는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왜경의 정치사찰 악질 민완 형사로 신철(申哲)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는 함경남도 정평 출신으로 독신이었으며 관철동에 하숙하는 자라는 것만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을 종횡무진으로 드나들며 모든 정보를 입수하여 총독부에 보고하는 자로 그 자가 독립운동 거사정보를 모를 리가 없다고 민족 대표들이 판단하고는 224일 민족대표 최린(崔麟)선생이 신철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신철을 만난 최린 선생은 너는 조선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 대답해 보라고 하니 신철은 조선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그럼 조선이 독립해야 하겠느냐? 일본에 예속되어야 하겠느냐? 하니 신철은 독립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최린 선생은 너 같은 사람이 있어서는 독립이 어려우니 네가 하나 죽어서 2천만 동포가 살 수 있다면, 너는 죽어야 한다고 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도우라고 말하면서 3.1 거사에 대하여 숨김없이 털어 놓자 한참 듣고 있던 신철은 다 알고 있다고 했고 아직은 일본 당국에 알리지는 않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최린 선생의 설득을 듣고만 있던 신철은 가부(可否)를 말하지 않고 다만 최린 선생에게 큰 절을 정중히 한 번 하고 잘 알았다면서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신철은 225일 오랜 번민 끝에 마지막으로 조국에 이바지할 것을 결심하고 총독부에 다음과 같이 거짓 보고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 만주로부터 신의주에 독립단이 침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급히 신의주로 떠난다.’고 하고 신의주로 갔는데 신철이 서울을 떠난 뒤 얼마 안 되어 서울과 전국에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막연한 첩보가 당국에 날아들어 왔으나 구체적인 수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신철이 배신한 것을 눈치채고 용산 헌병대에 연락하여 신철을 체포하라고 지시해서 신의주에 닿은 신철을 검거해서 당국에 체포되어 왔는데 이 사태를 미리 짐작한 신철은 품 속에 준비하고 있던 청산가리를 마시고 당국에 취조받으려 할 때는 이미 인사불성이 된 뒤였다고 합니다.

신철은 죽음으로써 3.1독립 거사를 가능케 했고 배반했던 조국에 처음이고 마지막으로 공헌한 사람으로 그 때 나이 40살 못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1964년 올다이제스트 4호에 ‘3.1운동을 가능케 한 신비의 사나이란 제목하에 실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지훈 선생의 한국 민족운동사에 이 이야기와 함께 3.1운동에 왜경의 주구(走狗)노릇을 하던 이들도 참가한 수가 상당하였고 이 신철의 이야기는 조지훈 선생도 어려서 들었고 최린 선생에게서 직접 들은 당시의 친일파 이원보가 쓴 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족 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고 민족 자주독립을 세계 만방에 천명하는 우리 한민족의 거사에 어느 누가 막을 수 없다는 대기운(大氣運) 앞에 장애물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후손들이 선열의 뜨거운 애국심을 본받고 계승해서 네편, 내 편이 없는 공동 운명체로 제23.1 독립운동 정신을 온 국민의 마음 속에서 공유하여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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