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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베기<196>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19-06-12 오후 6:55:43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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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안양 호계동에서 보리베기 작업을하는 사진이다.

1950~60년대 이른 봄 춘궁기가 돌아오면 대부분 가정에서는 식량이 떨어지고 먹을거리가 없어 초근목피로 간신히 연명하는 국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보리밖에 없어 밭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를 베어 끼니를 때우곤 했다.

보리는 깔깔하고 가공하기가 쉽지 않아 온 식구들이 달라붙어야 보리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낫으로 보리를 베어 타작한 후 아낙네들이 절구통에 보리를 넣고 찧어 껍데기를 벗긴 후 가마솥에 삶아서 꽁보리밥으로 식사를 해결하였다.

요즈음은 방앗간에서 쌀같이 도정하여 보리밥을 지어 판매하는 전문식당들이 있어 별미로 사먹는 사람들이 많으나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보리가 국민의 주식량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글 사진 : 안양시 만안구 박달로 우성아파트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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