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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안이마을 (達安洞)<241>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20-06-08 오후 8:43:47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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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안양시 비산동 달안이마을(達安洞) 사진이다.

이곳은 넓은 평촌들녘에 자리잡은 마을로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 이사 오면 곧 달아났다 하며, 비가 오면 가릴 것이 없어 삿갓을 쓰고 달아나야 비를 피할 수 있다 하여 삿갓들(笠坪)또는 달안이라 불렀다 한다.

일명 섬마을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허허벌판이라 겨울이면 너무 추워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지 않아 농가가 없었으나 1940년대 문화유씨, 진주강씨 등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해방 후 1980년대까지도 12가구의 농가밖에 살지 않았으며, 정부에서 절대농지 지역으로 묶여 주택건축이 불허됐던 곳이다.

1980년대 말 평촌신도시 건설로 달안이마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달안동으로 동명을 정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글 사진 : 안양시 만안구 박달2동 우성아파트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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