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0.8.7 20:6
전체 | 안양광역속보 | 정치/의회 | 행정 | 사회 | 교육 | 문화/스포츠 | 경제 | 환경 | 치안/소방 | 동영상 인터뷰 | <속보> | 경기도 |
박스기사
 전체
 안양뉴스넷칼럼
 사람과사람/인터뷰
 기획/특집/탐방
 정종기교수의 작은행복
 오피니언/기고
 이정범의 추억속의 安養
 배준석 시인이 읽어주는 詩
 관수언론포럼
 6.2 동시지방선거
 법률상식
 책 속에 길이 있다
 공연/행사
 김부삼의 주간운세
 인터뷰
 취재수첩
 기획연재
 우리동네 소식
  가장많이본뉴스
인터뷰│염호기
고독의 세계로
붓 ∙
박쥐의 공포
코로나19 대응
재개발-재건축은
대리시험
<인터뷰> 제1
평촌지역주택조합
후반기 안양시의
안양시의회, 의
호계3동새마을부
백선엽·박원순
안양시의회, “
안양시 아트봉사
명학마을(鳴鶴洞
안양시의회 사실
한국여성1인미디
안양시, “시민
GTX-C노선
 

 명학마을(鳴鶴洞)<249>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20-07-30 오후 7:50:13  325
- File 1 : 20200730195025.jpg  (211 KB), Download : 11
- File 2 : 20200730195025.02.jpg  (55 KB), Download : 7

 

 

 

1980년대 안양시 안양8동 명학마을(鳴鶴洞) 지역 사진이다. 주접동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조 좌의정을 역임한 심기원(沈器遠)이 부친 심간(沈諫)의 묘를 쓰려고 수푸르지(林谷) 뒷산 땅을 파는데 돌 밑에 학() 두 마리가 나왔다.

그 중 한 마리는 오미산(烏尾山) 쪽으로 날아갔고 다른 한 마리는 이곳 바위에 날아와 슬피 울다 어디론가 날아갔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 바위를 학이 울었던 바위라 하여 명학바위(鳴鶴岩)라 칭했고, 마을이름도 바위 이름을 따 명학동이라 불렀다.

이곳에 취락이 이루어진 것은 조선시대 함평이씨와 평산신씨 등이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이후 1974년 인근에 명학역이 생기고 1976년 명학국민학교가 개교했으며 중앙병원이 들어서고 중앙로가 연장 개통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발전된 곳이다.

글 사진 : 안양시 만안구 박달2동 우성아파트 이정범

 

 
 
   
 
   

 

최근기사
안양시 7개 민간단체 보조금 1억4,
안양 냉천지구, 2주택(1+1)분양자
안양시 아트봉사단 ‘희망나눔 힐링콘서
안양대학교, 교원 보직 인사발령
‘안양형 뉴딜’로 포스트코로나 시대
안양시, 하반기 공공청사 잇따라 개소
안양시, 경로당 8월 3일부터 운영
여권발급 무작정 줄서기는 그만...
중초사지 당간지주 일대 역사적 가치와
안양시, 하반기 복합형 어린이공원 정
동영상뉴스
안철수 후보 26일 강원도 춘천 방문
청와대 비서실장, 당 대표 역임한 기
문재인 후보 “대한민국이 선택할 통합
감동뉴스
안양과천 역대 교육장 초청 간담회 개
“119구급대 산모 ․ 갓
안양시, 명품시정 다시 한번 입증
깜짝뉴스
안양시 60대 남성 1명 메르스 확진
의왕서, 도로 펜스 절취 피의자 검거
의왕 다산왕, 두쌍둥이에 이어 세쌍둥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 110 802호 | Tel 031-386-8010 | Fax 031-388-5157
Copyright ⓒ (주)안양광역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knews051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