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정 희 숙
콩을 고른다
탱글탱글 잘 여문 콩 속에
씹다버린 껌처럼 찌그러진 콩이 있다
그 콩을 따로 모은다.
그들끼리 모아 놓으니
끼리끼리, 거기서 거기다
고를 것이 없다
끼리끼리 포갤 수 있다
끼리끼리 안을 수 있다
끼리끼리 즐겁다
모가 없는 것들은 안을 수 없다
살짝 스치기만 한다
씹힌 자국은 추억이다
자국 안에 흙이
자국 안에 바람이
자국 안에 햇빛이
자국 안에 벌레가
자국 안에 눈물이
자국 안에 손길이 들어 있다
끼리끼리 그 상처 보듬는다
끼리끼리 그 추억 씹는다
끼리끼리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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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 콩 이야기이다. 그런 콩 속에 오히려 바람이
불고 벌레도 살고 눈물도 있다는 이야기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영악스럽고 잘나고 미끈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왜 이리 삭막하고 쌀쌀한 바람만
부는 것 같은지. (배준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