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꽃
박 형 준
겨울 갈대밭에
휘이익 휘이익 벗은 발을 찍는
저 눈부신 비애의 발굽
살을 다 씻어낼 때까지
잠들지 못하는 공포, 겨울 갈대밭에
바람의 찬손이 허리를 감아쥐고,
빛나는 옷을 입고 내려온 물방울이
소금불에 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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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시를 쓰다 보니 평생 오독을 하며 살게 된다.
나는 그것을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갈대밭에서
‘눈부신 비애의 발굽’을 찾아내는 시인도 있지 않은가.
겨울바람을 견뎌내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인가. 끝없이
흔들어 대는 바람을 어찌 이길 수 있는가. 차라리 갈대
꽃의 눈부신 모습과 물에 젖은 갈대 발 사이에 ‘비애’란
말을 넣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살다보면 ‘비애’란 말은
어떤 일, 사이와 사이에서 빛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발굽’에서 말(馬)들의 질주를
꺼내고 싶은데 오판이란 누명을 걸쳐 입을까봐 포기 한다.
‘소금불’을 쓰려면 저녁노을을 꺼내야겠다고 역시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만다. 비쩍 마른 시인의 몸뚱이만 갈대 같은
계절이다. (배준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