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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을수록 더러워지는 삶

<유화웅 칼럼>

기사입력 2021-12-2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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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웅 시인, 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장

()나라도 고려(高麗)도 나라가 쇠하기 시작하자 민란을 비롯한 도적 떼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원나라에서 일어난 일명 홍건적(紅巾賊)은 그 규모가 한 나라의 군사력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한산동(韓山童)이란 자가 스스로 미륵불이라 자칭하며 민심을 선동하여 노략질을 일삼았습니다. 이 도적떼들은 1359년 공민왕 84만여명이 압록강이 얼어붙은 겨울에 침략하여 서경(평양)을 점령하여 분탕질을 하자 이방실 장군이 이끄는 고려 관군에 밀려 패퇴하였습니다. 그러나 3년 후 1361년 다시 세력을 키워 20여만명이 파죽지세로 고려 수도 개경까지 침략하였습니다.

공민왕과 고려 왕실은 복주(경북 안동)까지 피난을 갔습니다.

이 때 탁월한 정세운(鄭世雲 ?~1362)장군을 중심으로 안우(安祐), 이방실(李芳實), 김득배(金得培) 등 여러 장군들이 홍건적 10만여명을 몰살시키자, 남은 10만여명이 압록강 건너로 패주했다고 합니다.

이 정세운 장군은 공민왕이 세자 때 공민왕을 따라가 원나라에 갔다가 왔고 공민왕이 왕이되면서 1등 공신의 위에 올랐습니다. 천성이 충직하고 청렴하며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강하였습니다. 홍건적이 침략하자 총병관으로 개경을 홍건적으로부터 지켜내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1632년 홍건적이 개경에서 패하여 물러난 후 상상하기 어려운 유혈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권력의 최고 정점인 왕에 대한 신하의 일편단심은 자기 혼자라야지 다른 사람은 용인이 안되는 것이 권력 사회입니다.

정세운 장군이 개경 탈환의 최고 공로자가 되자 공민왕의 총애를 받았던 평장사 김용(金鏞 ?~1363)이 아주 교활하고 잔인한 음모를 꾀합니다. 김용도 공민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갔을 때 시종한 공로로 대호군에 승진된 사람입니다.

뜻밖의 홍건적의 난리를 겪으며 왕의 총애가 정세운 장군 쪽으로 기울어지자 정세운을 죽일 음모를 꾸밉니다.

안동으로 피난갔던 공민왕이 김용에게 은밀하게 내린 명령이라며 정세운을 죽이라고 위조한 편지를 안우와 이방실에게 보여줍니다. 김용에게 설득당한 안우와 이방실은 술자리를 배설하고 정세운을 초청하여 죽였습니다. 안우가 상주에 머물던 공민왕에게 정세운을 죽였다는 보고를 하러가자 김용은 거짓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 안우도 죽였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정세운을 죽인 이방실, 김득배를 가만두어서는 안된다고 모략을 해서 왕의 허락을 받아 두 사람도 죽였습니다.

김용의 세상이 되는 듯했습니다. 김용은 한 발 더 나가 공민왕을 폐위시키는 음모에도 가담했습니다.

원나라의 기황후가 기철 등 자신의 오빠들이 공민왕에 의해 제거된 것에 앙심을 품고 있던 차에 최유(崔濡)란 자가 기황후를 꾀어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德興君)을 고려왕으로 원나라 황제가 임명하자 김용은 최유와 좌정승과 판삼사직의 실권을 잡고 원나라 군을 동원하여 고려로 침입합니다.

홍건적이 초토화시킨 개경으로 오지 못한 공민왕은 임진강 주변의 흥왕사에 있었는데 김용과 최유가 부하 50명을 흥왕사로 보내어 공민왕의 처소를 급습했습니다.

공민왕은 재빨리 도망쳐 대비의 밀실에 숨어 목숨을 보전했습니다. 침실에는 공민왕 대신 환관 안도적이 누워있다가 살해당했습니다. 김용은 원나라 세를 업고 왕과 반대파를 모두 죽이려 했고 우정승 홍언박, 상장군 김장수도 이 때 살해당했습니다.

그렇게 권력을 탐하던 김용도 역신이 되어 밀성(밀양)으로 귀양을 갔다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팔과 다리와 목을 다섯대의 수레에 밧줄에 매달아 찢어 토막내어 죽게하는 거열형(車裂刑)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년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진실을 허위로 조작해서 권력을 누린 자의 말로를 봅니다.

정의가 항상 승리하지 않고, 힘을 가진 자가 허위를 진실로 둔갑시켜 혹세무민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자기를 더럽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럽고 탐욕으로 인생을 산 사람은 본인과 후손과 따르던 사람들이 닦아서 빛을 내려고 하지만 닦으면 닦을수록 더 더러워지는 것이 탐욕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탐욕의 삶은 자기를 버리는 삶입니다.

나아가 가문도 몰락하고 나라까지도 망하게 하는 것을 김용에게서 봅니다.

안양광역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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