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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웅칼럼

세종대왕의 눈물

기사입력 2022-07-0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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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스승 세종대왕(본명 도(祹) 태조6년 1397-1450 54세 재위 1418-1450 32년)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408년 충녕군에 봉해졌고 1412년 대군이 되고 1418년(태종 18년) 왕세자에 책봉되었습니다. 부인 소헌왕후(1395-1445)는 영의정 심온의 딸입니다.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 8남 2녀를 두었습니다. 맏아들 향(珦) 5대 문종을 비롯하여 둘째 유(瑈 수양대군 7대 세조) 셋째 용(瑢 안평대군), 넷째 구(璆 임영대군), 다섯째 여(璵 광평대군), 여섯째 유(瑜 금성대군), 일곱째 임(琳 평원대군), 여덟째 담(琰 영응대군)과 딸 정소와 정의 두 자매가 있습니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다복한 모습의 이면에는 평생 괴로움과 아픔을 지닌 가족사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세종께서 즉위하던 해 세종의 장인인 영의정 심온(沈溫)이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다녀오던 중 심온의 아우 심정(沈泟)이 병조판서 박습(朴習)과 같이 상왕인 태종이 나랏일을 처리한다는 비난했다가 옥사가 일어났습니다. 심온이 이 사건의 수괴로 사사되었습니다.
맏아들 향(1414-1452)은 세자로 책봉되어 20여 년간 아버지 세종을 도우며 왕업의 도를 배웠습니다. 제 5대 문종은 1450년 왕위에 올라 문무를 아울러 중용하고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그러나 워낙 병약한 몸으로 재위 2년 만에 39세로 승하하고 아들 홍위(弘暐)가 6대 왕으로 12세에 등극하였습니다.
둘째 아들 수양대군(1417-1468 52세)은 세종대왕과 문종이 단종을 잘 받들라는 유지를 받든 충성스런 대신들을 모조리 죽이고(계유정난(1453))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제 7대 왕위에 올랐습니다. 세조는 급기야 1455년 유배지 영월에서 17살의 단종도 죽였습니다.
셋째 아들 안평대군(1418-1453)은 함경도의 육진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시(詩), 서(書), 화(畵)에 능해 삼절이라 불리웠고 당대 제일의 서예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아버지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 해례본이 안평대군의 글씨이며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발문’이 대표적입니다. 조선 전기에 그의 서풍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금석문으로 세종대왕 영릉신도비가 있습니다. 결국 안평대군도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어 강화도 교동으로 귀양 갔다가 36세를 일기로 사사되고 말았습니다.
넷째 임영대군(1420-1469)은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 1445 세종의 명을 받아 총통 제작을 하였고, 1450년에 문종의 명을 받아 화차(火車)를 제작하였습니다. 형 세조가 정권을 잡자 그를 보좌하며 신임을 받았습니다.
다섯째 광평대군(1925-1444)은 효경, 소학, 사서삼경, 좌전 등에 능통하였고 이백, 두보 구양수, 소동파 등 시서에 깊이가 있었습니다. 성품이 너그럽고 격구에도 능한 그였지만 20세에 요절을 했습니다.
여섯째, 금성대군(1426-1457)은 형 수양대군이 정권을 탈취하자 이에 반발하였다가 삭녕으로 유배를 당했습니다. 그 후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반역죄로 처형당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32세였습니다.
일곱째 평원대군(1427-1445)은 학문을 즐겨 힘써 정진하다가 1445년 1월 세종 27년 천연두로 22살에 죽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신병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덟째 영응대군(1434-1467)은 세종대왕의 총애가 지극하였고 1463년 명황계감을 언해하였고 서예와 음악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영응대군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의 영응 대군의 궁에서 별세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아니, 우리나라 유사 이래 내치와 외치에 필적할 군왕이 없는 가장 존경받는 세종대왕의 가족사를 더듬어 보면서 살아 계신 때도 장인의 죽음과 자식들을 먼저 보내며 많은 눈물을 흘리고 가슴에 담고 있던 아픔들이 가슴속에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왕가에서도 자식 교육은 마음대로 안되는 것을 봅니다. 숯덩어리가 되었을 것이고 돌아가신 후 비극의 가족사 때문에 천상에서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실까 상상해 봅니다.

유화웅 - 시인, 수필가, 예닮글로벌학교장

안양광역신문사 (aknews051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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