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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웅칼럼

구상 선생과 왜관(倭館)

기사입력 2022-07-0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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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倭館邑) 왜관리(785-784)에 있는 구상(具常 1919-2004 본명 구상준)문학관을 들른 적이 있습니다.
구상 선생은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태어났고 1923년 함경남도 문천군 덕원면으로 이주했다가 1938년 원산 성베딕도 수도원 부설신학교 중등과를 수료하고 1941년 일본 니혼대 종교과를 졸업했습니다. 1946년에는 원산여자사범학교 교사를 했습니다. 북한 정권하에서 발표한 시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반동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1947년 2월에 북한을 탈출하여 월남했습니다.
6.25사변 후 1953년부터 1974년까지 20년간 왜관에 살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2004년 왜관에 구상문학관을 개관했습니다.
문학관을 둘러보기 전 왜관이란 지명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왜관(倭館)이란 왜인(일본인)이 머물러 통상할 수 있도록 마련한 관사인데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왜(倭)란 말은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글자의 뜻이 우리민족에게 강하게 와 닿습니다. 일본을 낮추어 ‘왜국’이라고 하는 것이라든지 일제하 경찰을 ‘왜경’이라고 한 것, 일본의 해적은 ‘왜구’라고 했고, 일본군을 ‘왜군’이라고 부르고 일본여자를 ‘왜녀’, 일본이 일으킨 난을 ‘왜란’이라고 한 것 등 모두가 우리민족사의 바닥에 깔려있는 정서를 나타낸 말로 유쾌하지 않습니다.
‘왜관’의 설치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고려 말기 이후 조선 초기까지 왜구의 노략이 심해지자 그 회유책으로서 삼포(三浦) 웅천(지금의 창원)의 내이포, 동래의 부산포, 울산의 염포를 열어서 일본인이 왕래하여 무역하는 것을 허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왜관을 두어 교역, 접대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나라가 조약을 맺어(계해조약) 일본 거류민을 60명으로 제한하였는데 세종 말년에는 2000여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주민들과 다툼이 자주 발생하다가 중종 때 와서 일본인에 대한 제제가 심해지자 일본인들이 대마도의 왜군 4,000~5,000여명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1510년(중종 5년) 삼포의 난입니다.
왜관 주위에는 성을 쌓고 그 안에 거류민, 관청, 시장, 상인, 창고 등이 있었습니다. 이 왜관을 중심으로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무역이 행해졌습니다.
세월이 지나 삼포의 왜관을 비롯 또 다른 곳에 있었던 몇몇 왜관은 없어지고 지금의 칠곡군의 군청 소재지인 왜관이 지명으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칠곡군 다부동은 6.25 사변 북한 공산군의 침략 때 대구 방어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전투지로 고 백선엽 장군의 탁월한 지휘로 승전한 곳입니다. 따라서 지역 주민의 자부심이 강한 지역이며 다부동 전투 전적비와 기념관이 건립되어 역사에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구상 선생의 작품 ‘초토의 시’가 다부동 전투를 전해주는 듯합니다.
세월이 흘러 ‘왜관’이란 지명은 일본과는 상관없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고유지명의 하나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 왜관에 구상 선생의 문학관이 자리잡아 찾아오는 이를 반기고 있습니다.
구상 선생의 시세계를 남상학 시인은 ‘견고한 기독교적 신앙에 바탕을 두면서도 매우 광범위한 정신세계를 포괄하고 있다고 하며, 그의 시는 건국신화, 전통문화, 한자 문화권의 고등 교양, 자연탐구는 물론 선불교적 명상과 노장사상까지 포용하며, 이들 사상과 교양은 항상 기독교적 구원의 예로 통합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오늘 속의 영원, 영원속의 오늘을 추구한 시인‘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구상 문학관에 뜰에 다음과 같은 그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 24’를 새겨놓은 시비가 있습니다.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 / 내일 맞이할 강은 / 오늘의 이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시간과 / 새사람을 만나면서 / 옛 강과 옛 사람을 만나는 / 착각을 한다’
이 시비는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에서 구상 시인을 추모하는 사람들로 세웠다고 합니다.
문학관을 나서면서 칠곡군의 행정 중심지가 ‘왜관읍’이 아니고 ‘칠곡읍’으로 명명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안양광역신문사 (aknews051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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