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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웅 칼럼

백정(白丁)이 의사가 되듯

기사입력 2022-07-2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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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이라고 하는 백정(白丁)은 소나 돼지 따위를 잡는 일이 직업인 사람을 말합니다.
백정은 고려 이후 쓰인 말인데 조선시대를 거치며 1894 갑오경장을 계기로 제도상으로는 신분적 평등권을 가지고 있으나 오랜 세월 사회적 관습과 묵시적 허용으로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일제 강점기는 그 백정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 7,538호(戶) 33.712명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실제 수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의 냉대와 조정의 무관심과 생계의 어려움 등으로 학대를 받던 이들이 1923년 5월에 경상도 진주에서 형평사(衡平社)를 조직하고 사회적 신분 향상을 요구하고 직업의 자유를 허락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한말까지도 조상이 백정이면 자손도 백정으로 살아야만 하는 모습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금(禁)줄을 대문 앞에 쳐 놓는 민간 풍속이 있었는데 남자 아이인 경우 새끼줄에 붉은 고추와 숯덩이를 끼워 걸어놓고, 여아인 경우는 생 솔가지와 숯을 끼워 걸어놓습니다. 그러나 백정의 집에서는 금줄에 소꼬리를 새끼줄에 끼워 걸어놓아 일반 가정과 다르게 했습니다.
1885년(고종 22) 서울 종로구 관철동 백정촌에서 박성춘이란 백정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봉출(또는 봉주리)이라고 지었습니다. 박성춘이 1894년 중병에 걸렸을 때 곤당골 예수교학당(지금의 승동교회)의 무어(S.F. Moore)선교사가 당시 고종황제의 어의였던 애비슨(O.R.Avison)에게 데려가 치료를 받아 완치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버지 박성춘 아들 박봉출(후에 박서양)이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봉출이는 자기 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해 준 애비슨 의사를 생각하면서 자기도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죽음에서 살려주는 애비슨 선교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아버지 박성춘은 아들을 데리고 무어(Moore)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 박성춘이 무어 선교사를 만나 ‘우리 봉출이를 의사로 키워주실 수 있나요?’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무어 선교사는 이름부터 바꾸자고 해서 ‘상서로운 태양’이란 뜻을 지닌 서양(瑞陽)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로써 박서양은 무어 선교사의 배려로 글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이 모두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교회 생활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박성춘은 1911년 12월 백정출신으로 최초로 장로가 되었습니다.
1896년 애비슨 선교사 등의 노력으로 백정들도 호적에 기록될 수 있었고 평민들과 같이 갓도 머리에 쓸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어 선교사의 천거로 애비슨 선교사 문하에 들어간 서양이는 애비슨이 운영하던 제중원(濟衆院)의 허드렛일을 하였습니다. 워낙 성실하고 똑똑한 박서양은 주경야독으로 신학문 공부를 하였습니다. 박서양은 애비슨 선교사의 신임을 받아 그의 꿈인 의학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1900년 10월 제중원의 학교에 입학을 했고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이며 한국인 최초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또 의사로 바쁜 시간을 내서 중앙, 휘문, 오성학교 등에 출강하여 물리를 가르쳐 2세 교육에도 헌신했습니다. 이승만, 김규식 등과 황성기독청년회(지금의 YMCA)에 나아가 사회교육자의 일원으로 활약했습니다. 1917년 만주 연길 용정으로 이주해서 구세 의원을 개업하고 교회도 설립하였으며 숭신소학교(崇信小學校) 교장 재임 시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가 학교가 폐교당하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또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군의관으로 의병전투에도 참가했고, 동아일보간도지국 총무 겸 특파원 등 독립지사로 공을 세웠습니다. 1936년 귀국하여 황해도 연안에서 개업 의료병원을 운영하다가 1940년 12월 당시 고양군 은평면 수색리 165 자택에서 55세의 젊은 나이에 별세하였습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습니다. 백정이 기독교선교사 무어와 애비슨을 만나 만민평등사상, 하늘로부터 타고난 존엄한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대접받게 되자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큰 인물로 기록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누구와 만나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질과 가치를 결정하는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안양광역신문사 (aknews051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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