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천하게 불러야 액운을 막고 오래 산다하여 개똥이로 불렸고, 명복(命福)이란 이름으로 어린 시절을 지냈고, 그후 재황(載晃)으로 개명되었고 익성군(翼成君)으로 봉해졌다가 국왕이 되면서 왕실의 전통에 따라 한글자로 ‘형 (㷗)’으로 호칭이 되었습니다. 조선 26대 왕으로 즉위(1864.1.21)하였다가 1896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高宗 1852-1919)은 연호도 개국(開國), 건양(建陽), 광무(光武)로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황제라고 주어진 시호(諡號)는 ‘고종통천용운조극돈륜정선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입니다.
장장 63자로 무슨 주문 같고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습니다.
고종은 왕으로 등극해서 황제가 되었다가 태황제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지위는 황제이었지만 그가 살아온 궤적은 어느곳 하나 황제라고 지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제의 실체가 없습니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고종(재위 1864~1907)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그늘에 가려 대원군의 아들일 뿐이었고 장가들어서는 민비의 남편 정도로, 세상에 능력없는 아들과 한 여인의 남편으로 존재감이 없을 정도이었습니다.
고종은 아버지의 섭정기간이 10년 동안 나라의 모든 일은 아버지 대원군이 좌지우지하였고 사사건건 시아버지와 대립하던 민비(후에 명성황후)가 대원군을 몰아내고 세력을 잡으면서 나라는 망조(亡兆)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민심은 떠나가고 외세의 침략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민비는 결국 왜국의 낭인(浪人)에 의해 시해당하는 비극으로 끝났고, 고종은 권신들의 손 안에서 이 궁궐, 저 궁궐로 옮겨다니고 심지어 러시아 대사관으로 몸을 의탁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허울뿐인 황제의 지위도 1907년 아들 순종에게 물려주고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 덕수궁 함녕전 곁방에서 66세를 일기로 1919년 1월 21일 별세했습니다.
나라꼴이 얼마나 한심했느냐는 고종 재위 43년간에 국내외 치세와 형국은 차치하고 한성판윤(서울시장) 1864년 4월 1일 이우(李㘾)란 사람부터 1907년 3월 11일 박의병까지 429명이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한성판윤 재임기간이 평균 한달 6일(46일)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나라는 망했고 고종도 명을 다해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황제의 죽음은 백성들이 슬퍼했고 각 지방마다 한양을 향한 동네 높은 봉우리에 망배단을 만들어 놓고 백성들이 호곡(號哭)을 하였습니다.
특히 고영근(高永根 1853-1923)이란 이는 고종의 사랑을 받은 군인으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했습니다. 그는 명성황후 암살에 가담한 후 일본으로 도망가 있던 우범선(당시 조선훈련대 2대대장)을 찾아가 그자를 암살하고 체포되어 8년간 옥고를 치렀던 충직한 사람으로 고종이 별세하자 능참봉을 자원하여 금곡의 홍릉에가서 능지기로 살았습니다. 고종의 능을 가꾸는 일이 끝나고 능에 세울 비석에 비문을 ‘대한고종대황제홍릉(大韓高宗大皇帝洪陵)’라고 새겨 세우려 하자 총독부에서 비문앞에 전(前) 자를 한자 더 넣어 새겨 세우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이 굴욕적인 비문은 세울 수 없다하여 4년간 비석을 세우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때 고영근 능참봉이 총독부 몰래 인부와 석공들을 사서 밤을 이용하여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순종 황제에게 비석을 세운 것이 선왕(先王 고종)의 넓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총독부에서 이 일에 대해 갑론을박하였으나 3.1 독립만세 사건 이후 민심을 건드려 폭동이 일어날 줄 모르니 비석은 그냥 두고 직무를 유기한 담당자 처벌로 일이 수습되었습니다. 고영근은 이로 인해 실직을 당했으나 일편단심 능지기를 하다가 비석을 세운 다음 해 생을 마치었다고 합니다.
패륜의 폭군 연산군보다도 못한 오백년 왕업을 송두리째 총 한 방 쏘지 못한 채 망하게 한 무능의 극치를 보인 고종에 비해 그래도 황제의 은혜를 입었다고 죽음을 무릅쓰고 충직하게 임금을 섬긴 고영근 같은 이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충직하고 순진하고 착한 백성들이 나라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유화웅-시인, 수필가/예닮글로벌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