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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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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웅칼럼

반구정(伴鷗亭), 압구정(狎鷗亭)

기사입력 2023-05-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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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건축물 중 정자(亭子)가 언제부터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 고려사 등에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된 건축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 경복궁의 향원정 등은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특히 사진작가들의 단골 소재이고 우리나라 관광 홍보책자에 수록되어 건축미를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육각, 팔각의 구조가 대부분이고 강릉 선교장의 활래정(活來亭)은 ‘ㄱ’자형으로 지었고 창덕궁의 부용정은 아(亞)자 형이고 그 밖에 부채형으로 건축된 것들도 있어 다양합니다.
정자의 이름은 자기가 짓기도 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하고, 임금이 지어서 하사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정자이름은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말로 지어 정자에 붙여 놓습니다.우리나라 역사에서 명재상 청백리의 대명사로 추앙받는 황희(黃喜 1363 고려공민왕 12~1452 조선문종2)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에 은거하면서 반구정(伴鷗亭)을 지어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여생을 보냈습니다. 임진강 하류 절경지에 세워져 있습니다. 강하류 낙하진(洛下津)과 가까이 있어 낙하정(洛下亭)이라 하였다가 임진강에 갈매기들이 많이 노닐어 ‘갈매기와 벗하며 지내겠다’고 반구정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강가에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허허하게 인생을 산 황희정승의 정신이 반구정에 담겨 있습니다. 고려말부터 조선왕조 개국에 이르기까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국의 격변과 혼란한 사회를 관통하며 89세까지 장수하며 많은 벼슬을 거쳐 조선의 명군 세종조에까지 이르러 영의정으로 18년간 국정을 이끌다가 86세에 초야로 돌아간 조선조 대표적 청백리입니다.
파주반문산 황희 선생 유적지에는 반구정과 함께 방촌기념관이 있고 그의 영정을 모신 방촌선생영당(厖村先生影堂)과 15대 외손 맹헌을 모신 월헌사, 제사를 지내는 경모재 빈객을 영접하여 침식을 제공하던 재직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각을 바라보고 있는 황희선생의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동상좌대에는 그의 시 관풍루(觀風樓)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그의 시를 읽어보노라면 그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듯 합니다.
집이 높으니 능히 더위를 물리치고, 처마가 넓으니 바람이 통하기 쉽네, 큰 나무는 땅에 그늘을 만들고, 먼 산봉우리는 하늘을 쓸어가는 것 같네
반면 갈매기를 희롱의 대상으로 삼으며 은퇴한 정치가가 있습니다.
갈매기와 관련 있는 또 한사람 한명회(韓明澮 1415-1487)는 호를 구정(鷗亭)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희롱한다는 뜻을 지닌 압(狎)자를 보태 압구정이라고 했습니다. 계유정난의 공신으로 사육신과 김종서를 척살하는 공로를 세웠습니다.
한명회는 할아버지 한상질이 조선이 개국하자 나라이름을 명나라에가서 ‘조선(朝鮮)’이라고 국호를 받아가지고 온 사람이며 그의 종조부 한상경은 개국공신으로 영의정에 이른 명문가 후손입니다.
그의 두 딸은 8대 예종의 왕비 장순왕후이고, 9대 성종의 왕비였으니 그의 권력은 하늘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세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예종 때 영의정을 지냈습니다.
세도 가로 그에게 뇌물을 바치러 가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도 합니다. 한명회는 한강가에 화려한 정자를 짓고 압구정(狎鷗亭)이라 했는데 중국의 사신들도 조선을 방문할 때는 이곳을 방문했고 날마다 잔치를 별였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벼슬을 그만두고 한강변에서 갈매기를 회롱하며 노년을 유유자적하며 보낸 것 같지만 왕실에서 강만 건너면 되는 곳에 정자를 지은 것은 다시 벼슬길에 오르고 싶다는 은근한 야심의 발로였다고 하겠습니다.
그 속셈을 꿰뚫은 시가 있는데 판사 최경지(崔敬止)는 ‘세번 불러 은근히 대접함이 투터운 사랑받았으니, 정자가 있건만 돌아와 놀 수가 없었네, 가슴 속에 스스로 기회 아는 마음 고요하면, 벼슬하는 마당에서도 백구와는 친할 수 있었으리라.’
한명회의 말년은 불우했고 나중 연산군 때 부관참시를 당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압구정은 한명회의 기념관이나 추모하는 역사적 흔적은 없고 1970년대 강남개발로 아파트 숲과 패션의 거리 성형외과 병원과 명품상점과 백화점으로 대한민국 부촌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갈매기와 짝하던 황희 정승의 반구정과 갈매기를 희롱하던 한명회 정승의 압구정이 세월이 흘러 그 유적의 장소가 너무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인, 수필가/예닮글로벌학교 교장

안양광역신문사 (aknews051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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