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요사에 여성가수가 등장한 것은 암울한 일제시대인 1925년 윤심덕의 '시의찬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사의 찬미'의 곡은 '이바노비치'의(Iosif Ivanovic 1845-1902)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의 곡에 가사를 입힌 곡으로 창작곡이 아닙니다. 그후 이애리수(1926년)의 “황선옛터' 이난영(1927)의 '목포의 눈물' 박단아(1928)의 '나는 열일곱살이에요'가 지금도 생명력을 가지고 후배가수들의 레퍼토리에 들어있습니다.
이어 1930년대 들어서 황금심의 외로운 가로등(1930), 알뜰한당신(1935) 심연옥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5)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1937)', 이화자의 '꼴망태 목동'(1938) 1940년대에 백난아 '갈매기쌍쌍(1940) 장세정의 '고향촌'(1947), 박단아의 '슈샤인보이'(1947), 백설희의 '무정부르스'(1948) 1950년대 들어서 황금싱의 '삼다도소식'(1952) 심연옥'한강'(1952), 금사향의 '홍콩아가씨”(1952), 송민도의 '나하나의 사랑'(1953), '내일이면 늦으리'(1954), 황정자의 '오동동타령'(1954) 이어 박재란의 '럭키모닝'(1957)을 지나 나애심, 한명숙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1957 이미자의 '열아홉순정'이 한명숙의 노란셔츠의 사나이(1961) 현미씨의 밤안개(1962)가 크게 히트하면서 여성 스타 가수들이 탄생되었습니다.
현미씨의 본명은 김명선(金明善 1938-2023)으로 평안남도 강동군 고천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예로부터 평안도 사람은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하여 사나운 호랑이가 숲에서 뛰어나온다는 격으로 전해왔는데 현미씨는 성격이 어쩌면 평안도 사람의 전형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호방하고 누구에게나 친밀감을 느끼게하고, 거침없는 대화로 좌중을 압도하고 솔직하며 능력자이며 신비감도 느끼게 하는 스타였습니다. 그리고 무대에 선 모습은 그야말로 무대가 꽉 찬 느낌을 받게 했습니다. 좌중을 휘어잡는 제스쳐와 높은음 낮은음을 마음껏 오르내리는 음역(音域)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였고 그녀의 노래는 듣는이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쓸어내리는 탁월함이 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요, 작곡가요, 밴드마스터인 이봉조씨와 결혼하여 부군 이봉조씨가 작곡한 작품을 현미씨가 불러 히트쳐 가요계를 풍미하였습니다. 가수활동하는 이들이 평생 한 곡 히트하기도 어려운 이들이 많은데 현미씨는 해마다 발표하는 곡이 히트하며 그녀는 대중가요계의 여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녀의 히트곡들은 밤안개(1962)를 시작으로 내사랑아(1963), 보고싶은 얼굴(1963), 떠날때는 말이 없이(1964), 무작정 좋았어요(1966), 애인(1966), 몽땅내사랑(1967), 바람(1968), 별(1971) 그후 2017년 '내걱정을 하지마'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곡은 시대와 세대와도 관계없이 가슴으로도 불리고 입으로도 불리며 세상에 즐거움과 기쁨을 주며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유교적 사상과 윤리관이 우리나라 사회를 지배하던 해방 이후 가요계의 풍토에 여성가수들이 설 땅이 매우 좁았을 때, 선구자적 도전의식과 사회적 성취의욕이 강했던 현미씨는 대중가요계의 흐름을 주도하며 대중들의 메마른 정서를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선,후배 가수들에 모두 품는 넓은 가슴을 가졌고 개인과 가정사의 어려움도 그녀를 주눅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히트시킨 노래 가사에 그의 인생을 예언하듯 녹아있어 마음이 짠하기도 합니다.
태어나 어린시절 '밤안개'같은 시대상황에서 월남하였고 '무작정 좋았고' '몽땅내사랑'을 구가하던 전성기를 보낸 현미씨. 그러나 '떠날때는 말없이' 홀연히 우리의 주변을 떠난 그였지만 국민들의 마음에는 진정한 프로, 영원한 레전드, 국민 디바(Diva)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인생사 오복 중에 고종명(考終命 : 자기수명대로 살다 편히 죽음)이라 했는데 현미씨는 세상 떠나기 전날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집에 와서 잠자듯 별세한 그의 생은 어쩌면 큰복이라 생각 됩니다. '사랑, 사랑 내사랑 몽땅 내사랑' 현미씨, 천국에서 못다부른 노래 맘껏 부르시길 바랍니다.
유화웅-시인, 수필가/예닮글로벌학교장